내가 이직을 한 건 돈을 더 벌고 싶어서였다. 이전 회사는 오래 다녔던 만큼 일도 마음도 편하고 매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월급이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편하게 다닌다는 사실에 지불하는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적인 계기로 인생 목표를 구체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내가 앞으로 어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을지 정리하며 대강의 미래 계획을 정하고 나니 목표 금액이 정해졌다. 자연스레 해마다, 달마다 모아야 할 돈이 정리가 됐고 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아낄 수 있나 결정하기 위해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서너 달 가계부를 정리하니 자연스레 대강의 항목별 예산도 정해졌다. 가끔은 적게도 쓰고 적당히 넘치기도 하면서 대여섯 달을 더 써봤다.

 

자연스레 느꼈다. 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 사람은 아니구나. 나는 지난달에 비해 이번 달에 돈을 더 썼다고 위기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용카드를 쓴다고 해서 잔고가 부족할 정도로 쓰지도 않는다. 대신 아무리 예산을 정해두더라도 수입과 저축액을 대강 인지하는 터라 무작정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덜 쓰면 신기하고 더 쓰면 뭘 썼지 싶지만 남이 쓴 가계부 들여다보듯 마냥 재미있다. 고로, 내 목표치를 채우려면 차라리 더 버는 게 빠르다는 거다.

 

저축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 그런가, 이쯤 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에 바짝 버는 편이 더 이득 아닐까. 언제 더 벌기 시작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보다 나이를 더 먹었을 때가 더 벌 건 확실한데 벌써부터 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 페이에 만족할 필요가 있을까. 난 더 몇 십 더 번다고 더 쓸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지금 회사가 특출나게 연봉을 올려준 건 아니다. 이전 회사에 계속 있었을 때보다 여기서 일할 때 내가 갖게 될 이력의 가치 차이 역시 감안한 선택이었다. 대신 전 회사에서는 신경 쓸 필요 없었던 이런저런 잡다한 일 역시 처리해야 한다는 것도 각오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업무가 처음에 약속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잡다하고 백 배는 더 사소하지만 아직까지는 버틸만해서, 정확히는 페이 차이를 생각하면 납득할 범위 내라 다니고 있다.

 

내 이력으로 받을 수 있는 돈 이상으로 더 받는 것도 아니라 이 정도 이력이면 더 편한 회사에 갈 수도 있었다는 건 안다. 당시 내 사정이 복잡해서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할 때가 아니었으나 시기상 더 미루기도 애매했던 때라 복잡한 면접 없이 적당히 내가 원하는 시기에 출근하라 말해줄 이 회사를 선택한 거다.

 

결국 나는 월급을 더 받는 만큼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가끔 내 업무 외의 일도 있지만 그건 내가 경력직이고 여기보다는 조금 더 큰 회사에 다녔고 공대 주제에 섣불리 경영을 부전공해서 이래저래 답답한 나머지 오지랖을 부린 결과물인 거라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내가 가끔 이 회사는 어쩌니 저쩌니 투덜대더라도 당연히 내가 감내해야 할 상황이라는 거다.

 

그걸 나 스스로 충분히 알면서도 가끔 헛구역질이 날 만큼 이 회사에서 겪는 답답함이나 울분이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와 마구잡이로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야말로 내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다.

 

진짜 한 두어 달 너무 스트레스받다 못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의욕이 없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회사도 답답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가 내 인생에서 뭉텅 잘려나갔으면 좋겠고 그게 무리라면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지워져버리고 싶다고 매일 아침마다 생각했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어딘가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 들면 달력을 보면서 월급날까지 며칠이 남았나 곱씹으며 하루치 월급이라도 더 벌어야겠다 생각하다 그 하루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너무 하찮은데 그걸 돈으로 환산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퇴근하고 또다시 출근했었다.

 

너무 오랫동안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최근에는 회사에 제시간에 출근한 적도 없지만 다들 내가 너무나도 죽을 것 같이 구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일정이 나오지 않아서 야근도 참 많이 하고 또 그러면 야근했으니 늦을 수도 있다 이해해주고 그러면 나는 또 들이는 시간만큼 효율이 안 나오는 것 같아서 우울해지고 그랬다. 이제와서 우울증이라도 왔나 진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 원인을 병원에 가서 알았다.

 

아니 나는, 미세먼지 때문인 줄 알았지. 두어 달 내내 감기에 걸려있었을 줄이야. 기침 좀 한다고 갔던 병원에서 열을 재 봤더니 37.5도래고 그게 진짜인지 반문하다 들어간 진찰실에서는 감기도 있는 것 같고 역류성 식도염도 있어서 기침을 하는 거라니까 일단 약을 하나 먹어보자 더라. 내가 감기라고? 이렇게 멀쩡한데 나에게 감기가 있다고? 열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의사가 맞다고 하니까 맞나부다 생각하며 약을 하나 먹었다가 진짜 순식간에 컨디션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위약 효과라기엔 기침도 줄었고 나른하지도 않고 당장 아침에도 개운하고 머리 회전도 더 빨라져서 맞긴 하다 싶다. 또 약을 먹을 때마다 나날이 나아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감기 환자였던 거다. 기침을 하면서도 감기 환자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도 당황스럽고, 때 되면 낫겠거니 생각했던 것부터 지금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데 당연히 컨디션에는 별 영향이 없을 거라 확신한 채 지냈던 것도 이상하고 또 이 때 한참 사이트를 정리하던 때라 예전 일기를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병원 가서 제가 열이 있다고요??? 이러고 있었다니까 웃기기도 하다. 그러니까 뭐야, 결국 아파서였어!

 

고로 내가 내린 결론은 제목과 같다. 특히 나처럼 만사에 무미건조한 사람이 근거없이 지나치게 부정적일 때면 아픈 게 아닐까 꼭 의심해보자. 나는 너무 모든 걸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믿는 경향이 있다. 신체가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걸 늘 망각한다. 나 자신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늘 조심하고, 꼭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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